박재홍 (18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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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재홍은 1892년에 태어난 일제강점기의 관료로, 조선총독부에서 근무하며 여러 지역의 군수와 이사관, 도지사를 역임했다. 일본 유학 후 조선총독부에 봉직했으며, 1940년 창씨개명했다. 2002년 친일파 708인 명단에,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2004년에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인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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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홍 (1892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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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정보 | |
한자 | 朴在弘 |
가타카나 | 박쿠・사이코- |
2. 생애
박재홍은 1892년 충청남도 논산군에서 태어났다. 일본 유학을 통해 와세다 대학교 강사록을 학습하고[1], 메이지 대학 법학부 선과에서 강의를 받았다[1].
해방 이후, 2004년 대한민국에서 제정된 일제강점 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인정되었다.[1]
2. 1. 일제강점기 활동
1911년 충청남도 노성군의 임시직 관리로 채용되면서 조선총독부 관리가 되었다. 그해 말 판임관 견습으로 채용되었고, 1912년 정식으로 군서기가 되면서 노성군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이후 청양군을 거쳐 함경남도 홍원군, 고원군, 장진군에서 근무했다.1923년부터는 충청남도 내무부 지방과에 발령받았고, 이듬해 고등관 8등의 총독부 군수로 승진하였다. 함경남도 풍산군에 발령받아 군수로 일하면서 1931년 일본 정부로부터 훈6등 서보장을 수여받기도 했다.[1]
풍산군, 신흥군, 영흥군 군수를 거친 뒤 1934년 고등관 5등의 조선총독부 이사관으로 다시 승진하여 함경남도 내무부 산업과장으로 재직했다. 그해 말에는 고등관 4등으로 승급하는 등 특별히 승진이 빨랐다. 함경남도 이사관이던 1935년 총독부가 시정 25주년을 기념하여 표창한 표창자 명단에도 들어 있다.
이후 평안남도 참여관을 거쳐 태평양 전쟁 종전 직전에는 도지사에까지 승진했다. 평안남도 참여관이던 1943년 종5위 훈4등에 서위되어 있었다. 태평양 전쟁 종전 당시에는 충청남도 지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이때 아들 박종만도 총독부 군수로 재직 중이었다.[3]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 중 도지사, 도참여관, 조선총독부 사무관의 3개 부문에 수록되었고,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관료 부문에는 아들 박종만과 함께 포함되었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3. 비판 및 논란
박재홍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관료를 지냈으며, 2004년 대한민국에서 제정된 일제강점 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인정되었다.[1]
3. 1. 친일 행적 논란
1911년(메이지 44년)에 보통 시험에 합격하여[1] 조선총독부에 봉직했다. 판임관 견습으로서 노성군 임시 고용원을 거쳐[2] 1912년(다이쇼 원년)에 노성군 서기로 임명되었다. 1914년(다이쇼 3년)에 청양군 재무계로 전임되었고[2], 홍원군 서무계를 거쳐[2] 1919년(다이쇼 8년)에 홍원군 간이 기상 관측소 보조원으로 임명되었다[2]。1923년(다이쇼 12년)에 함경남도 내무부 지방과 및 사회과 근무를 거쳤으며[2], 1924년(다이쇼 13년)에 풍산군수로 승진하였다[2]。1927년(쇼와 2년) 신흥군수, 1931년(쇼와 6년)에 영흥군수를 역임했다[2]。1934년(쇼와 9년)에 함경남도 이사관 겸 상공과장으로 전임되어 군수품 조달을 추진했다[1]。1940년(쇼와 15년)에 창씨개명했다. 그 후, 경기도 이사관을 거쳐 1942년(쇼와 17년)에 평안남도 참여관으로 승진했다. 산업부장 등을 겸임했다[1]。1944년(쇼와 19년)에 충청북도 지사로 임명되었고[1], 1945년(쇼와 20년)에 충청남도 지사로 전임되었다[1]。
2004년 대한민국에서 제정된 일제강점 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인정되었다[1]。
참조
[1]
백과사전
박재홍(朴在弘)
http://encykorea.aks[...]
[2]
웹사이트
박재홍 ( 朴在弘 )
http://db.history.go[...]
[3]
서적
실록 친일파
돌베개
1991-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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